말세에 복 있는 자 | 김춘식 목사 | 2021-06-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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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계시록16:10-16절 개역한글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11.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16.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말세에 복 있는 자 [요한계시록 16:10-16]
[암송구절]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6:15)
요한계시록은 세상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평화로운 나라가 새 예루살렘은 믿음을 지킨 어린양의 신부들이 누리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존재를 그리고 있다. 공동체의 저항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참으로 예배할 자를 예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시록에는 그토록 많은 경배와 찬양의 장면이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일곱인, 일곱 나팔 재앙에 이어 일곱 대접의 재앙은 모세의 손을 통해 애굽에 행하여진 열 가지 재앙(출7:20-12:30)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지만 재앙의 강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고, 또 그 범위가 우주적이라는 면에서 상이하다. 그러나 이처럼 강하고 큰 재앙을 겪으면서도 악한 자들은 결코 회개하기를 거절할 뿐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끝까지 대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9, 11, 21절), 실로 이들은 이제 마지막 심판을 스스로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 번째 대접 재앙 [10-11] 1] 짐승의 보좌 위에 쏟아진 다섯째 대접 [10] 사탄에게 받은 악한 권세로 의인들을 탄압하고 박해하는 모든 세력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왜곡하고 정의를 짓밟는 무리들을 결코 용납치 않으신다. 사회 구조나 체제나 국가 권력이나 하나님의 공의를 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지 심판의 대상이다. 로마의 군사력은 불의한 수탈과 착취, 억압의 도구였다. 황제 숭배의 어리석음. 성도들은 오직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켜냈다. 짐승의 보좌 위에 쏟아진 대접은 불의한 권력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상징이다. 2] 흑암의 고통 [10] 흑암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혀를 깨물 만큼 심한 고통을 당했다.[10] 악한 세력에 가담하거나 지지하지 않았다 해도 악한 통치자에게 항거하지 않고 침묵, 또는 무관심으로 일관한 사람들은 모두 짐승에게 동조한 자들이다. 하나님은 의인을 무고히 핍박하는 국가 권력은 물론이거니와 의인이 고난당하는 현실을 그냥 방조한 백성들에게도 심판의 형벌을 내리신다. 3] 회개치 않는 백성들 [11]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자들은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다. 환란에 임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 여부를 알 수 있다. 즉 환란 가운데서 온갖 불평과 원망, 그리고 비방하는 자 중에 올바른 신자는 아무도 없다.
여섯째 대접 재앙 [12-14] 구체적으로 실현되기까지는 알 수 없다. 1] 말세는 사상적으로 혼탁한 시대다. [13] '칼 마르크스'의 사상이 얼마나 엄청난 재앙과 변혁들을 가져왔는가? 그의 한 저서 '자본론'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나라들을 멸망하게 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내세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크고 작은 개인숭배가 횡행하였으며 구 동유럽제국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의 무서움과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간의 노력 지식 경험으로 사회를 지탱하고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교회와 성직자와 성도에 대한 박해는 하나님에게 행하는 행위이며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자는 반드시 멸망하는 역사의 결과이다. 더러운 영(13), 즉 이적을 행하는 귀신이 영이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14). 이 구절은 종말에 세상의 통치자들이 사단화 될 것이라는 뜻이다. 2] 말세는 거짓 선지자들도 이적을 행한다. [14] 하나님만 사랑하는지를 알고자 하신다. 참과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는 것은 그가 행하는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행실의 열매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이 변화되고 새로워지는지를 주의해 보아야 한다. 3] 말세에는 사상적인 큰 싸움이 있게 된다. [14] 우리는 지금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일어나는 선과 악의 싸움에서 매일매일 승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거짓 선지자들의 주된 활동 무대가 바로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내부에서 발생하기 쉬운 모든 거짓과 허식, 위선과 분열의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상 마지막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 [15-16]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들을 한꺼번에 멸망시킬 마지막 전쟁의 장소로 상징되고 있다. 1] 갑작스럽게 임할 주의 재림 [15] 지혜로운 성도들은 마지막 때를 감지할 수 있다. 오늘날이 바로 재림 직전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전쟁과 기근의 소식, 이상 기후, 사람들의 난폭해짐, 이단들의 발호 등 마지막 때를 예시하는 징조가 우리 주위에 너무도 쉽게 보인다. 주님께서 갑작스럽게 임한다는 것은 결국 어리석은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다. 세상 연락에 빠져 쾌락과 육신의 기쁨만을 추구하다 보니 주님의 재림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자기 옷. 3:4에서 언급된 '흰 옷'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얻게 되는 의(義)를 가리킨다. 2] 재림에 반역하는 자 [16] 세 영은 앞의 13절에 언급된 더러운 세 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사탄의 영이다. 이 더러운 세 영이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세상의 왕들을 모았는데 아마겟돈은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다. 성도들은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적 연구보다 주의 말씀을 더 신뢰해야 한다.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이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 불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계 19:19-21] 3] 재림을 준비해야 할 성도 [15] 날마다 새로워지면서 그 마음과 행실을 정결하게 갖추어 나갈 때 주님 재림의 날은 정녕 복된 날이 될 것이다. 고난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교회가 전해야 할 일은 소망을 전하는 일이다. 요한을 찾아오신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은 믿음을 확신케 한다. 이것이 초대교회 고난 받는 교회를 위한 가장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들이다. 분명한 것은 주님이 이 길을 걷는 우리를 세세토록 왕 노릇하는 승리의 길로 변화 시킬 것이라는 확신이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 그 완전한 승리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길을 걸으면서 당하는 고난은 더 이상 두려움이나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궁극적인 승리를 내다보면서 고난의 숲을 지나 전진해 가자. 믿는 자들이 걸어가는 걸음 가운데 고난은 있으나 절망은 없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여 보십시다. 1.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두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2. 요한계시록에 찬양과 경배가 많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3. 회개하기를 거절하는 세력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짐승의 보좌에 쏟아진 대접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5. 환난 속에서도 불평 원망 비방하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6.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행위는 어떤 것이며 결과는 어떠합니까? 7.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는 무엇으로 구별합니까? 8. 거짓선지자의 활동 무대는 어디이며 교회가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9. 주의 재림이 임박한 징조들을 말하여 보십시다. 10. 주님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고난이 공포의 대상이 아닌 이유는 왜 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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